햇볕
국민학교에서 돌아오면
빈 집, 열쇠는 내게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였다
오십 평 대지의 단층 주택 남향 마당에서
열쇠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사람 대신 햇볕과 어우러져 눈이 부셨다
그에게 뾰로통한 신경질을 냈다
내 작은 몸을 말아 올릴 듯 사방을 둘러싼
햇볕이 바람에 날려 가길 바랬다
한동안 달만 보다
출근길 온 대기에 가득 찬 먼지에 햇볕이 산란하여 반짝였다
은폐였다, 그는 다시
1999년 오전 침대 모서리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내게
45도로 각을 세워 삐딱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말을 걸었다
“남들은 세기말이라지만 정작 마침표를 찍은 건 혼자
젊지도 늙지도 않은 인간이여
네가 원한 것은 해방인가, 탈출인가, 고립인가
혼자라서 두려운가?“
그는 120도를 더 진행하며 정물화 속의 거친 오이 같은
나를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햇볕은 길이와 각도와 농도와 시간을 바꾸면서 같은 말을
계속 지껄였다, 이년 째에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다
햇볕을 피하면 그늘
계단을 네 발로 부여잡고 있다
횡으로 분절된 지면은 이미 정지했다, 사망 선고였다
위상차는 무한대
햇볕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햇볕이 말을 걸면 대답하기로 했다
‘혼자 견딜 수 있나요?’
그가 스미고 지나간 냄새를 추적하여
그를 쫓아가기로 했다, 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세 번째 만남을 기다리며 가파른 계단에 선
그는 아직도 내 이면에 있다
그래서 그의 손을 잡기로 했다
햇볕이 내 살갗에 각인시켜 준 실존의
자유라는 것
속죄는 끝났다
+당기무(이정환)_노마드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