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기무 작품집

햇볕

자유실존프로젝트 2022. 2. 4. 20:33

햇볕

 

국민학교에서 돌아오면

빈 집, 열쇠는 내게 혼자만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였다

오십 평 대지의 단층 주택 남향 마당에서

열쇠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사람 대신 햇볕과 어우러져 눈이 부셨다

그에게 뾰로통한 신경질을 냈다

내 작은 몸을 말아 올릴 듯 사방을 둘러싼

햇볕이 바람에 날려 가길 바랬다

 

한동안 달만 보다

 

출근길 온 대기에 가득 찬 먼지에 햇볕이 산란하여 반짝였다

은폐였다, 그는 다시

1999년 오전 침대 모서리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내게

 

45도로 각을 세워 삐딱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말을 걸었다

“남들은 세기말이라지만 정작 마침표를 찍은 건 혼자

젊지도 늙지도 않은 인간이여

네가 원한 것은 해방인가, 탈출인가, 고립인가

혼자라서 두려운가?“

그는 120도를 더 진행하며 정물화 속의 거친 오이 같은

나를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햇볕은 길이와 각도와 농도와 시간을 바꾸면서 같은 말을

계속 지껄였다, 이년 째에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다

 

햇볕을 피하면 그늘

 

계단을 네 발로 부여잡고 있다

횡으로 분절된 지면은 이미 정지했다, 사망 선고였다

위상차는 무한대

햇볕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햇볕이 말을 걸면 대답하기로 했다

 

‘혼자 견딜 수 있나요?’

그가 스미고 지나간 냄새를 추적하여

그를 쫓아가기로 했다, 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세 번째 만남을 기다리며 가파른 계단에 선

그는 아직도 내 이면에 있다

그래서 그의 손을 잡기로 했다

햇볕이 내 살갗에 각인시켜 준 실존의

자유라는 것

속죄는 끝났다

 

+당기무(이정환)_노마드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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