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연작5 - 환승구에서
하루에 두 번씩
나는 얼굴 없는 사람들과 있다
그렇다고 내게 유령의 세계에서 사느냐고 묻지는 말기 바란다
나는 저들이 유령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이다
환영을 보는 것이 아니니 유령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저들의 얼굴을 한 명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가끔 저들이 유령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에 두 번씩
나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걷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정면으로 다가오는데도
그래서 손 붙잡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한 번도 그래 본 일이 없다 우리는 서로
시속 오 킬로미터의 속도로 마주쳐 오던
바로 그 속도로 서로에게서 멀어져 간다
마치 망각의 강을 건넌 듯 그 얼굴들을 잊고 만다
이들과 한 번이라도 손 붙잡고 인사해 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다 만약 그랬다가는
서로의 시간은 정지되고 그만큼 다른 이들과는
시공간 왜곡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제발
내가 얼굴을 잠시라도 마주하는 이 사람들과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지 않았느냐고 묻지는 말기 바란다
그저 우리는 속도와 시간이 반비례한다는 공식을 증명할 따름이니
+당기무(이정환)_노마드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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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만큼 외로운 공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한 공간 안에서 만나는 일도, 그렇게 많은 사람과 같은 차량에 타는 일도, 그렇게 많은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일도 흔한 일이 아닐 터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이나 벌어집니다. 흔할 수 없는 일이 적어도 이 도시에서는 참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어느 대학생이 남긴 글이 생각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여행에서, 아니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내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재미있어졌을까. 설령 그랬다가 무안할 정도로 '왜 이러셔'라는 난색을 보이면 어떤가, 최선을 다하는 나로서 의미가 있는 것. 그렇지만 말을 걸지 않으면 결국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참 깊은 통찰이죠? 이 친구는 해외로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아일랜드 어느 시골 기차역에서 낯선 외국인을 친구로 만들면서 생각했던 것을 쓴 글이라고 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제 글에서 보이는 비겁함은 극치에 이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지하철 연작>에서 보여드리는 색깔이란 내향적 인간이 보여주는 '지극히 피곤함'에 다름아니니, 이렇게 묻혀 가는 많은 인생들의 관심에 대한 갈망을 부드러운 눈으로 지켜 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