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연작4 - 가판 신문의 독백
지하철 연작4 - 가판 신문의 독백
나는 신문지다
지하철 이호선 신촌역을 오후 두시 삼십오 분에 지나는
앞에서 두 번째 객차의 선반 위에 나는 얹혀 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그냥 신문지가 아니라
신문이다 적어도 내게는
이천이백육십삼 킬로바이트의 문자와 이미지 정보들이 담겨 있다
이것으로 나는 신문지가 아니라는 자각을 얻었다
사람들은 나를 탐내듯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여섯 시간 전에, 그것도
단 삼십 분간 내게 주어진 영화(榮華)였다 나는 그냥 신문이 아니라
재화(財貨)이다 누구도 돈 없이는 나를 가질 수 없다
적어도 한때는 그랬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고 화내기도 했다 심지어
힐끗 어깨 너머로 나를 훔쳐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다 여섯 시간 전의 일이다 지금은 벌써 네 시간째 선반 위에
숨어 있다 아까는 객차 청소부도 신문지 수거 요원도
나를 그냥 지나쳤다 내 가치는 지금
사각(死角)의 존재일 뿐이다
나 말고도 신문지 몇 치가 더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우리는 모두 신문지가 아니라 어엿한 신문이었다
다만 맨 상단에 박힌 커다란 제호나 아니면
울긋불긋한 그림들을 보고 사람들은 손을 뻗었다
대부분은 내릴 때 선반 위로 다시 던졌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놓칠 세라 얼른 집어드는 것이다
나는 세 번을 어떤 치는 일곱 번을 사람들 손아귀에 체포당했다
마지막엔 다 구겨져서 폐지가 되었다 그 치도 처음에는
손아귀에 잡히고 내던져지는 것에 몸이 찢기는 듯
바스락거리곤 했다 그러나 이제 그 치는 없다
누군가 그 치를 들고 가 버렸다
다른 치들은 객차가 잠시 쉬고 있을 때 중년의 여성에게
몸을 빼앗겼다 그 치들이 슬펐던 것일까
기쁨의 외침을 내지른 것일까
단지 내가 기억하는 건 바시식 소리가 유난히 컸다는 것이다
나만 남아 다시 순환선을 돌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새 신문들이 이 선반에, 사람들의 손에
채 마르지 않은 잉크를 몰래 문지를 것이다
운 좋게 내가 그들 사이에 섞여 있으리라는 사실은
기쁨이 아니다 어차피 나를 집었다 놓는 일은
우연의 연속이고 내가 참을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신문지 아니 신문에 던져 주는 값 어린 눈길이 그립기 때문이다
내 삶의 의미는 시한부를 넘겼다
결국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똑같은 폐지공장에서 신문지로 만날 테지
손을 내밀지 않겠는가 그대 손바닥에
그대 손가락에 배어나오는
땀이 내 피부를 슬며시 적셔 그로 인해 살점이 너덜나도
칭찬 듣기를 바라는 아이처럼
품에 살을 비비고 싶어하는 그대 아이처럼
그대 손이 내 혼을 부활케 할 터인데
+당기무(이정환)_노마드 물고기